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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관 만들기/컨셉진스쿨 100일 글쓰기

21,990원

by miss.monster 2020. 12. 11.

2020.12.11.11일차(D-89)

 

나는 아침에 신랑의 도시락을 싼다. 신랑 회사는 시내에 있어, 밥값이 워낙 비싸기도 하고 신랑은 바깥 음식을 먹으면 속이 좋지 않다고 했다. 절약 겸 건강관리 겸. 처음에는 밥과 밑반찬을 쌌다. 밥, 반찬, 과일, 젓가락을 챙기면 최소 3개 통을 갖고 다녀야 해서 신랑은 간단하게 김밥을 싸 달라고 했다. 신랑은 반찬투정을 하는 성격은 아니고, 김밥을 워낙 좋아한다. 그래도 혹시 질리지 않도록 김밥 속을 나름 다양하게 바꾸고 있다. 참지, 소시지, 김치, 유부초밥 등. 안의 내용물은 바뀌어도 없으면 안 되는 필수 재료가 있다. '김, 밥, 들기름' 가장 많이 쓰지만, 한 번도 사본 적이 없는 재료다.

쌀과 들기름은 시부모님께서 농사를 지으셔서 늘 챙겨주시고, 김은 고모님께서 명절마다 넉넉히 챙겨주신다. 최근, 들기름과 김이 떨어졌다. 평소 같으면 가족들도 볼 겸, 시댁에 가서 필요한 먹거리를 챙겨 온다. 어머님은 늘 우리가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이, 농사지은 제철 곡식과 채소를 챙겨주신다. 하지만, 코로나 때문에 올해는 시댁에 가지 못했다. 

들기름 병을 거꾸로 엎어 마지막 한 방울까지 짜내다, 안 되겠다 싶어 마트로 나선다. 명절 선물세트에 들어있는 들기름, 중국산이 섞인 들기름, 국내산 들기름, 국내산 중에서도 저온 압착 들기름. 원산지와 추출방법에 따라 5천 원~3만 원까지 가격이 천차만별이었다. '들기름이 이렇게 종류가 많구나.' 동네 마트 몇 곳을 둘러보고, 진열장 앞에서 인터넷 검색도 해본다. 그리고 중간 가격의 국내산 들기름을 집는다. 2병에 21,990원. 2만 원이면 우리 부부 둘이 외식을 2번은 할 수 있는 돈인데. 신랑이 좋아하는 치킨, 분식 세트.

 

부모님 생각이 났다. 나는 사실 농사에 대해 잘 몰랐던 터라, 결혼 후 시부모님을 보면서 알게 되었다. 비가 너무 많이 와서 혹은 비가 너무 안 와서 농사가 잘 될 때도 있고 잘 되지 않을 때도 있다. 그리고 농사가 잘 되었다고 해도 값이 잘 안 나올 때도 있다. 농사는 하늘의 뜻이라 했던가. 부모님은 내년에는 하지 말아야지 하시면서도 몸고생 마음고생하시며 매년 농사를 지으셨고, 때마다 수확하신 곡식과 제철 채소를 챙겨주셨다. 어머님은 혹여 챙겨주는 걸 까먹을까 봐 혹은 본인이 집에 없을 때는 우리가 잊지 않고 챙길 수 있도록, 달력 뒷면이나 이면지에 메모해두셨다. 그 덕에 우린 꼬박꼬박 햇곡식을 먹고, 식비를 절약할 수 있었다. 

 

집에 돌아와 신랑에게 얘기했다. 돌아오는 길에 다른 마트를 몇 군데를 들렀는지. 들기름이 이렇게 비싼 줄 몰랐다고, 안 사다 사려니 더 비싸게 느껴졌다고. 새삼 부모님께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고. 올 해는 코로나 때문에 부모님을 뵈러 가지 못해 더욱 죄송했는지도 모르겠다. 어버이날, 생신, 명절에 가끔 전화를 드리거나 용돈을 보낼 뿐이었다. 내년 설에는 가족들을 만날 수 있을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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