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2.23.85일 차(D-15)
신랑의 취미는 '영화보기'다.
그런데 사람이 많은 곳은 싫어한다. 코로나 전은 주말 아침에 영화관에 가서 조조영화를 보곤 했다.
지금은 다행히(?) 넷플릭스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얼마 전에는 프로젝터도 새로 구매했다.
선명한 화면, 생생한 음질, 안락한 소파에서 편안하게 즐긴다.
넷플릭스 콘텐츠가 워낙 다양하다 보니
어떤 영화를 골라야 할지... 미리 보기 하며 돌리다 보면 시간이 더 많이 걸린다.
얼마 전부터, 신랑이 보고 싶다던 영화가 있었다.
'남편이 우울증에 걸렸어요.'라는 일본 영화
우스갯소리로 '신랑, 우울해~?'라고 장난을 쳤다. 혹시나 정말 우울한 건 아닐까 걱정되어 차마 진지하게 묻지 못했다.
불 꺼진 거실. 영화에서 밝은 장면이 나올 때마다 잠깐씩 환해진다. 그 틈에 신랑의 표정을 살폈다.
영화의 주인공들은 어쩐지 우리와 닮은 면이 있었다.
여자는 만화가. 남자는 회사원.
남자는 꽤 성실하고, 규칙적인 생활을 한다. 요일별 메뉴를 정해놓고 매일 도시락을 직접 싼다.
여자는 연재를 하고 있지만, 잘 나가는 만화가는 아니다. 남자는 여자에게 아무것도 신경 쓰지 말고 만화만 그리라 했고,
정말 그렇게 살고 있다.
신랑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충분하지는 않더라도 돈은 자신이 벌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차라리 여주인공은 만화가라는 직업이라도 있지. 나는 회사도 잠시 다녔다가, 웹디자인도 잠시 배웠다가, 그림도 잠시 그렸다가, 지금은 글을 쓰고 재테크를 해보겠다고.... 잠깐씩, 잠깐씩.... 그렇게 7년을 신랑 혼자 돈을 벌고 있다. 합리화한다면 나는 나름 알뜰살뜰하게 살아보겠다고 절약하고, 내조를 한다고 할 수 있지만 어쨌든 저쨌든 신랑이 외벌이를 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남자는 어느 날부터 알 수 없는 등의 통증, 무기력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리고 병원에서 '우울증'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여자는 남자에게 회사를 그만두라고 했다. 그리고 전보다 적극적으로 돈벌이와 남자를 돌보는 일에 나섰다.
나는 여자가 부러웠다.
나는 지금도 신랑에게 회사를 그만두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아내가 되고 싶다.
신랑이 나에게 준 것만큼, 아니 그 보다 더 신랑에게 신랑만을 위한 시간을 주고 싶다.
그런데 난 여전히 내가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나마 지금 생각한 것은,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재테크'공부라도 해보자이다. 앱테크, 짠 테크 등 소비를 줄이는 것에서부터 나중에는 투자도 할 수 있다면 좋겠다.
어느 날, 남자는 여자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그러자 여자는 고백했다.
사실은 자신의 남편이 우울증이라는 것을 얘기하는 게 부끄러웠다고.
이제 사실대로 말할 수 있어. 뿌듯하다고도 했다.
다른 이야기지만, '말하고 나면, 아니 말할 수 있게 되면' 편하다는 것에 공감했다.
나는 성과가 보이기 전까지 내가 하고 있는 것을 주변에 알리지 않았다.
내가 생각하기에 내가 하는 것들(요가, 영어공부, 독서모임) 이 대단치 않아 숨기고 싶었다.
아니, 조금 더 솔직히 말하면 돈이 되는 일도 아닌데, 왜 하냐고 할까 봐 무서웠다.
작년에 책을 쓰고 싶다는 것을 딱 2명에게 말했다.
신랑, 그리고 친한 언니. 신랑은 나보다 내가 쓴 글을 더 열심히 검토해주었고, 언니는 만날 때마다 날 응원했다.
만약 그 둘이 없었다면 책을 쓰지 못했을 것이다. 책을 다 쓴 후, 가족들은 많이 놀랐던 것 같다.
전에는 집에서 뭐하냐고 물으면 나는 늘 '이것저것'이라고 했다.
지금은 '영어 공부해, 독서모임 나가, 책 읽어.'라고 솔직하게 구체적으로 말한다.
그리고 다들 '응, 그래.' 그러려니 한다.
말하고 나면 잃는 것보다 얻는 게 많다.
여자는 그동안의 일을 만화로 그렸고, 남자가 쓴 일기와 함께 책으로 만들었다.
그동안 숨겨왔던 것을 아예 공식적으로 발표한 셈이다.
이들의 이야기는, 우울증으로 고민하고 숨겨왔던 사람들에게 힘이 되었고
남자는 강연까지 하게 되었다.
얼마 전, 내가 책을 쓴 얘기를 들은 친구가 말했다.
자신이 지금 그렇다고, 무언가를 해야 할지 모르겠고, 할 자신도, 말할 용기도 없었다고.
그런데 내 얘기를 들으니, 자신도 무언가라도 해야겠다고.
말할 수 있다는 용기가 나에게 있다는 것.
나를 응원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리고 나는 나처럼, 머뭇거리는 누군가에게 힘이 될 수 있다는 것.
물론, 말한다고 다 해결되거나 무조건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남자의 우울증은 완전히 나아지지 않았다.
좋은 날도, 그렇지 않은 날이 계속 반복되었다.
극복은 나아지는 게 아니라, 시계추처럼 흔들흔들거리는 것이라고 했다.
나아지는 날도 그렇지 않은 날도 흔들거리며 함께 지내는 것.
우울증도 용기도 어쩌면 삶 자체가 그런 것 같다.
흔들거리며 지내는 것.
함께 흔들거려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다.
참고로, 이 영화는 원작 만화가 있고 실화를 바탕으로 쓰였다.
역시 진짜 삶만큼 영화 같은 것은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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