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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관 만들기/컨셉진스쿨 100일 글쓰기

정월대보름

by miss.monster 2021. 2. 26.

2021.02.26.88일 차(D-12)

 

친구들의 인스타그램이 온통 나물사진이다.

정월대보름이라고 친정엄마들이 딸내미들을 위해서 총출동한 것 같다.

우리 엄마도 질 사람이 아니지. 며칠 전부터 '나물과 찰밥'얘기를 꺼냈다.

 

내가 가겠다. 엄마가 오겠다. 그러다가 결국 엄마가 잠시 들르기로 했다.

나는 엄마가 올 시간에 맞춰, 동네 떡집에 갔다.

엄마가 여기까지 오는데, 밥은 안 먹겠다고 하고 빈손으로 보내긴 서운하고.

엄마가 좋아하는 기증떡, 오빠가 좋아하는 인절미, 사장님이 추천해주신 치즈 꿀설기. 조금씩 담았다.

 

다 와간다는 엄마의 연락을 받고, 아파트 입구로 나갔다.

엄마는 주차장에 들어오지도 않고, 비상등을 켠다.

우리집에는 들어갈 의사가 없다는 뜻이다. 진정한 드라이브 스루랄까.

 

엄마는 운전석에서 내리자마자, '이거 혼자 들고 갈 수 있을까?' 

나물이랑 찰밥만 싸오진 않았을 것이라 예상은 했지만, '와우........'

엄마는 늘 상상 이상이다.

 

동그란 스탠 통 2층이 노란 보자기에 싸여있다. 보통 저런 통엔 김치를 넣던데.

투명한 봉지에는 새빨갛고 알이 굵은 사과가 보인다. 금테를 두른 것이 딱 봐도 비싸고 맛있는 사과다.

그리고 네모난 한약방 봉지에 반찬통이 보인다. 아마도 찰밥과 나물이겠지.

 

"엄마, 어디 전쟁 났어?"

"뭐~별 거 없어, 다 지지한 거야~"

 

엄마와 나는 줄 것만 주고, 받을 것만 받고 헤어졌다.

나는 멍하니, 엄마 차가 사라질 때까지 서있다.

 

어찌어찌 들고, 주방 식탁 위에 짐을 푼다.

 

스탠 통 1층은 닭볶음탕, 2층은 물김치

투명한 봉지에는 사과와 깨끗하게 손질된 달래 한 봉지.

달래에서는 아직 흙냄새가 생생하다. 분명 캔 지 얼마 안 되었으리라.

한약방 봉지에는 나물, 찰밥, 장조림.

나물은 도대체 몇 가지인 건지, 칸칸마다 이름도 모를 나물이 꽉꽉 들어차 있는 게 마치 출퇴근 열차 같았다.

 

엄마 말로는 9가지 나물을 먹어야 한다고 한다.

(세어보니 정말 9가지이다. 미신은 잘 믿지도 않으면서.... 우리가 건강하길, 무탈하길 바라는 마음이겠지)

 

내가 옆에 있었으면, '너무 많아서 둘이서 못 먹어.' 그만 담으라고 말렸을 텐데

나도 없으니 엄마가 양껏 담았으리라.(아마도 어느 정도 양 조절은 했겠지만)

내가 하는 음식은 어린아이 소꿉장난 같았다. 나는 그때 그 때 조금 해서 다 먹는 게 좋아서 항상 1.5~2인분 정도만 한다.

신랑이 얼마 전에 오코노미야끼를 10장 가까이 만들었길래, 누구 닮아서 손이 큰가 했더니 우리 엄마를 닮았나 보다.

 

'이걸 언제 정리하지?' '나물은 금방 상할 텐데 이걸 언제 다 먹지?'

 

엄마가 싸준 음식들을 조금씩 꺼내서, 저녁상을 차렸다.


밥과 나물을 좋아하는 신랑은 엄청 신이 났다. 

 

"색시. 나, 밥 더 먹어도 돼?"

"그럼. 배부른데 억지로 먹지는 말고"

"나... 남은 밥 다 먹어도 돼?"

"응??!! 이거 엄청 많은데??"

 

엄마에게 신랑이 밥을 2 공기나 먹었다고 하니, 무척 좋아했다.

 

"밥이 엄청 많은데, 그걸 다 먹겠다고 하잖아"

"그래~?! 먹고 싶다는데~많이 줘~"

 

신랑과 설거지를 하다, 문득 엄마가 없으면 난 보름에 나물도 제대로 못 챙겨 먹겠구나 싶었다. 

 

몸도 안 좋은데, 얼마나 애를 썼을까.

갓 지은 음식을 해주고 싶어, 새벽부터 바삐 움직였겠지.

나는 겨우 떡 몇 개 들려 보냈는데, 손이 부끄러워진다.

 

"신랑, 엄마 없으면 나 어떡하지? 오빠 없으면? 신랑이 없으면?"

"그러니까. 사람 일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색시도 혼자 살 준비를 해야 해."

(모르는 사람은 오해할 수 있지만, 이건 나를 엄청 걱정하는 마음이다.)

"혼자?! 나 혼자는 못 살 것 같은데....."

 

벌써 혼자 남은 기분이 들어, 무서워졌다.

오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밥은 잘 먹었는지, 별일은 없는지, 아픈 데는 없는지, 담배 좀 줄이라는 잔소리까지.

3분. 길지 않은 통화지만 목소리를 들으니 조금 안심이다.

함께하는 동안 잘 해야지, 잘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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