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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관 만들기/컨셉진스쿨 100일 글쓰기

소고기만 가져가라더니

by miss.monster 2021. 2. 11.

2021.02.11.73일 차(D-27)

 

이번 설은 시댁, 친정 그 어디도 가지 않고 집에서 보내기로 했다.

명절이라기보다는 긴 주말 같은 기분이다.

 

엄마는 아무래도 먹을 거리가 걱정이었나 보다.

집에 소고기가 선물로 들어왔다며, 갖고 가라고 했다.

내가 코로나 때문에 안된다고 질색팔색을 하니, 본인은 어차피 병원 진료가 있어 집에 없을 거라고

와서 소고기만 가져가라고 했다.

 

그것마저 안 가져간다고 하면, 서운해할 것 같아 알겠다고 했다.

동네 빵집에서 빵을 사고, 이것 저것 챙겨 나섰다.(오랜만에 운전은 늘 떨린다.)

1시간 반 정도 걸려서 도착한 집. 현관문 밖에서는 기름 냄새가 나고 있었고, 문을 여니 안개가 자욱하다.

설마 했는데, 주방에서 전을 부치고 있는 엄마의 뒷모습이 보였다. 식탁 위에는 이미 만들어놓은 나물, 전, 밑반찬이 가득했다.

 

엄마는, 보자마자 "밥 먹어야지." 한다. 자신은 이따 또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야 해서 금식해야 하니, 나만 먹으란다.

 

아침에 병원 다녀온 사람이, 장은 또 언제 본 건지..... 명절 전이라 야채며, 생선이며 명절 음식재료들이 다 비싼데...

자신은 먹지도 못할 음식을........ 갓 부친 전, 갓 버무린 나물, 내가 좋아하는 황태 껍질 강정.... 반찬을 내오는 엄마의 옷은 밀가루와 양념, 기름이 여기저기 묻어있다. 내가 밥을 먹는 동안, 엄마는 재빠르게 설거지와 주방정리를 한다. 행여나 내가 한다고 나설까 봐.

 

밥을 먹고, 엄마는 이것저것 잔뜩 챙겨주고 병원으로 갔다. 나는 아빠 가게에 잠시 들른다. 코로나 때문에 안 보려고 했는데 시골 할아버지, 할머니께 드릴 용돈을 전해드려야 해서. 아빠는 손님과 얘기 중이라, 오빠랑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오빠는 갑자기 서랍에서 툭. 상품권 봉투를 꺼내 건넸다. "상가에서 준 건데 가져가." 백화점 상품권. "왜? 이거 마트에서도 쓸 수 있는데, 가서 써." "됐어. 귀찮아." 말투가 다정해야만, 마음이 전해지는 건 아니라는 걸. 나는 오빠에게서 늘 느낀다. 

 

손님이 나가고, 나는 아빠에게 용돈 봉투를 드렸다. 아빠는 웬만하면 내가 갖고 가는 선물, 용돈을 받지 않아, 나를 곤란하게 했다. 할아버지, 할머니께 전해달라고 하니 거절하지 않고 받으셨다. 아빠는 말없이 서랍에서 풀을 꺼내 용돈 봉투에 칠했다.  용돈 봉투가 빳빳해서 잘 닫히지 않았는데, 혹시나 싶어 봉투를 여미고 싶었던 것 같다. 풀로도 봉투가 붙지 않자 서랍에서 밴드를 꺼냈다. 밴드에서 양쪽 끝으머리 접착면을 잘라내서 테이프처럼 붙였다. 대일밴드가 붙여진 용돈 봉투라니, 아빠의 모습이 왠지 귀여웠다. 

차가 막힐 것 같아, 나설 준비를 했다. 아빠는 오빠에게 돈을 쥐어주며 근처 디저트 가게에서 마카롱을 사가라고 했다. 내가 괜찮다고 했더니, 아빠와 오빠는 아는 가게라 안 그래도 빵을 사려고 했다고 했다. 오빠는 자연스럽게 사장님에게 인사를 하고, 안부를 물었다. 나는 못 이기는 척 적당히 몇 개 골랐다. 오빠는 더 고르라고 했고, 나는 이 정도면 됐다고 했다. 오빠는 "뭐가 제일 잘 나가나요? 그냥 여기 있는 거 하나씩 다 싸주세요."라고 했다.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부자들이 백화점에서 "여기 마네킹에 걸린 대로 주세요." 혹은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주세요."라고 말하는 건 봤어도.... 디저트 플렉스라니.... 요즘 디저트들은 크기는 작지만 비싸다. 하나씩만 담아도.......... 이게... 얼마........ 오빠와 아빠가 아는 가게라 나는 차마 적극적으로 말리지 못하고 주는 대로 다 받아서 나왔다. 

 

조수석에 엄마가 싸준 반찬, 아빠와 오빠가 사준 디저트, 상품권을 앉혔다. 왠지 모르게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우리 가족들이 엄청난 부자인 것도 아니다. 다들 본인 것은 잘 사지도 않는다. 엄마는 오빠한테 제발 옷 좀 사라고, 옷 없는 사람처럼 산다고 뭐락하고. 아빠는 없이 살아서, 아끼는 게 몸에 밴 사람이다. 없으면 안 쓰면 되는 거라며 70 평생을 신용카드 한 장 없이 산다. 엄마는 동네 옷가게에서 5천 원, 1만 원짜리 옷 쇼핑에 스트레스를 푼다. 나 참 많이 사랑받고 있구나....

따뜻하고 슬픈 느낌이 든다. 이 가족들과 함께 할 시간이 줄어들고 있다는 생각에, 가족이라는 것 하나만으로 아무 이유 없이 사랑받고 사랑할 수 있다는 생각에....아무리 만날 수 없다고 해도, 명절은 명절이고 가족은 가족이구나..

 

돌아오는 길에 팟캐스트, 김짠부의 가계부일기를 듣는다.

돈 벌고 싶다. 돈 벌어서 가족들 호강시켜주고 싶다.는 생각만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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