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이방인의 산책
나는 책을 볼 때, 처음/목차/끝을 먼저 본다.
흐름, 순서와 상관없으면 목차에서 끌리는 것을 먼저 보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원래는 처음부터 주욱 읽었는데, 앞부분만 새까만 교과서처럼 읽다 마는 경우가 생겨 바꿨다.
목차에서 고르다 보면 무의식적으로 내가 지금 관심 있는 것을 알아챌 수도 있어,
마치 타로카드를 보는 듯한 재미도 있다.
책의 구성은 보통 처음엔 작가 소개나 프롤로그, 마지막은 누군가의 서평이나 에필로그다.
고독한 이방인의 산책은 책날개에 작가와 옮긴이 소개가 있었으나
프롤로그도, 에필로그도 딱히 앞 뒤랄 것이 없었다.
작년에 글을 쓰고, 책을 만드는 수업을 들었다.
'책'이라는 게 만들어지기까지 생각보다 많은 과정, 많은 사람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경험했다.
그 후로, 책을 보면 이렇게 만든 데에는 분명 의도?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
요리조리 살펴보게 된다.
어떤 이유일까, 궁금해진다.
삶은 온통 낯선 나라다. - 잭 캐루악
짧은 인사말 같은 문장 뒤로, 바로 본론으로 훅 들어간다.
첫 차례의 제목은
샌프란시스코의 어느 날
책 제목 때문인지, 코로나 상황 때문인지 나는 순간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여행할 도시를 고르듯, 차례에 적힌 제목을 살핀다.
소속 없는 사람, 의미 없음의 자유, 충분히 잘 해냈어, 칭찬받지 못해도
끌리는 곳을 먼저 가본다.
소속 없는 사람
인간은 어느 부족에라도 반드시 소속되어야 한다.
에드워드 윌슨
나는 어느 무리로 규정지어지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딱지가 존재하는 이유가 있다. 꽤 오래 알아온 사이라도 두 사람이 서로를 진정으로 이해하기는 어려운 법인데 하물며 처음 만났다면 어떻겠는가? 그래서 대신 딱지나 스테레오 타입에 의존하는 것이다. 그런 것들로 서로를 가늠하면 상대가 맘에 드는지 안 드는지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된다. 다소 부당하고 환원적일 수도 있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
나는 소속감에 대한 갈망이 있다. 어릴 때에는 '단짝 친구', 커서는 '회사'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을 꽤나 좋아한다. (전업주부라, 집에 있는 시간이 길다 보니 알게 되었다.)
나에게 소속이 필요했던 건, 저자의 말처럼 누군가에게 보여줄 '그럴싸한 딱지'가 갖고 싶었던 것이다.
어디든, 누구든 첫 만남에서 '결혼 후 전업주부로 지내고 있어요.'라고 소개한다.
이 딱지가 '나'를 판단되는 기준이 되는 것이 무척이나 싫었다. 벗어나고 싶어서 취직을 하려고 했으나, 잘 되지 않았다.
지금은 '소속'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 의문이 든다.
나는 소속(직장)이 필요한 걸까, 무리(함께할 사람)가 필요한 걸까?
의미 없음의 자유
우리는 동료 인간이나 신, 또는 다른 초자연적 존재가 제시한 특정한 임무를 완수하려고 태어난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냥 여기 있고 우리의 소명을 찾는 일도 우리에게 달렸다. 바로 그 탐색이야말로 우리 삶이 가치 있는 것임을 느끼게 해 준다.
사실은 모든 게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지만 그러에도 그 사실을 무시하고 그냥 그대로 즐기고 우리 열정을 일깨우는 것에 온 마음으로 뛰어들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바보는 삶이 본질적으로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똑똑한 사람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무의미하다는 걸 알면서도 나름의 방식대로 살며 즐긴다. 무의미하게 진정하고 무의미하게 즐거운 삶을 사는 것이 내게는 가장 이상적이다.
충분히 잘 해냈어, 칭찬받지 못해도
어머니는 칭찬을 원하시지만 그것은 일시적인 만족밖에 주지 못한다. 어머니는 객관적으로 좋은 엄마였는데 웬일인지 요리를 더 잘하는, 돈이 더 많은, 등등의 다른 엄마들하고 끊임없이 자신을 비교하시는 것 같다.
책 제목을 처음 봤을 때
나는 '어서 와, 한국은 처음이지?'라는 프로그램을 떠올렸다.
한국에 처음 와본 외국인 친구들의 리얼한 '한국 여행기'를 통해 '여행' 그대로의 보는 즐거움과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재미까지 동시에 선사하는 '신개념 국내 여행' 리얼리티 프로그램
*출처 : naver 프로그램 소개
외국인으로서 우리나라에서 살아보니 이렇다, 저렇다는.. 얘기가 나오겠지.
읽는 내내,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저자에 대해 몰랐다면, 책에 외국스러운 단어들을 뺀다면(지명, 이름 등)
저자가 외국인이라고 생각했을까?
저자가 갖고 있던 고민 혹은 생각들은 국적과 상관없이 느껴졌다.
소속, 외로움, 관계, 나...
'나'는 '우리나라'에 살고 있지만, 같은 고민에 몰두하고 있다.
나는 '뉴질랜드'에서 6개월 정도 보낸 적이 있다.
오히려 외국에서 이방인으로 지냈을 때, 이런 고민들을 덜 했던 것 같기도 하다.
문득, 책 앞머리의 문장이 다시 떠오른다.
삶은 온통 낯선 나라다. - 잭 캐루악
내가 지금 어디에 살고 있는 것과는 상관없이
우리는 '삶'에 있어서 모두 동등한 이방인일지도 모르겠다.
외국인이라서, 다른 나라에 살고 있어서가 아니라
그저 인간이라서 삶을 산책하는, 고독한 이방인인 것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샌프란시스코의 어느 날
루저나 왕따가 되고 싶지 않아서 입에 담지 않고 살아온 이런 이야기가 사실은 모두에게 대단히 가치 있는 것임을 믿게 되었다. 우리가 서로 더욱 가까워지고 누구도 온전히 혼자가 아님을 체감하게 해 주기 때문이다.
나는 같은 이방인으로서 다른 이방인의 마음을 살피듯 책장을 넘긴다.
고독하지만, 더 이상 고독하지 않다. 연결된 느낌이다.
고독함을 느끼는 나와 같은 이방인이 어딘가에 어디에나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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