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1.02.33일차(D-67)
8시 30분. 화장실을 다녀온 후, 물 한잔에 유산균을 삼킨다.
자연스럽게 태블릿으로 요가매트 위에 올라, 요가소년 실시간 스트리밍을 재생한다.
몸의 흐름은 늘 그랬던 것과 같다.
마음의 흐름은 조금 다르다. 인사하는 시간 동안, 다른 생각으로 빠진다.
'무슨 꿈이었더라.'
나는 꿈에서 깨어나려다 잠에서 깼다.
보통 꿈에서 느낀 감정이 실제 현실로 이어질 때, 깨곤 한다.
가위에 눌려 '공포'가 현실처럼 느껴져,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다 깰 때
가족 중 누군가 아프거나 죽는 꿈이 현실처럼 느껴져 '슬픔'이 벅차 울다 깰 때
오늘은 두 번째 경우였다.
주로 엄마, 오빠에게 무슨 일이 생기는데, 오늘은 외할머니였다.
할머니는 몇 년 전에 돌아가셨다. 가끔 꿈에 나오지만, 슬픈 상황은 아니었다.
오늘도 처음부터 슬프진 않았다.
잘 기억나진 않지만, 시골의 방 안에서 온 가족이 모여있던 것 같다.
할머니는 커트 머리에 빠글빠글하게 파마를 했다. 커트 머리치곤 제법 머리가 길었는데, 염색을 한지 좀 되어 뿌리 쪽은 흰머리, 끝쪽은 검정머리였다. 할머니는 머리를 정리하려고 앞머리를 5:5로 나눠 실핀으로 고정을 하는 중이었다.
그러다 할머니는 울음을 터뜨리셨다. 정확한 말은 기억나지 않지만 거울을 보고 늙어버린 자신의 모습을 슬퍼하셨던 것 같다. 깊게 파인 주름과 살만 남은 피부. 머리를 정리해도 예뻐 보이지 않는다며 웃으면서 울어버리셨다.
나는 그런 할머니의 얼굴을 두 손으로 쓸었다. 마치, 어린아이를 세수시키듯. 그러고 꼭 껴안으면서 "아니야, 할머니 이뻐"라고 말을 하다 깼다. 내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내가 눈물이 난 것은, '슬픔이나 그리움'이 아니었다. '죄책감과 미안함'이었다.
우리 집은 부모님이 가게를 하면서, 외할머니가 같이 살기 시작했다. 고부갈등과는 다르지만, 같이 살다 보면 부딪치기 마련이다. 아주 사소한 것들로. 나는 그럴 때 가운데에서 왔다 갔다 했다. 엄마에게는 할머니의 입장을, 할머니에게는 엄마의 입장을 얘기하면서. 시간이 흐르며 할머니는 점점 아이 같아졌고, 나는 엄마 편을 드는 날이 잦아졌다. 엄마를 힘들게 하는 할머니가 밉기도 했다. 할머니는 연세치곤 정정 하시고 식사도 잘 드셨다. 우리는 할머니가 100세 넘게 사실 것 같다고 했는데, 백내장 수술 후 급격하게 건강이 안 좋아지셔서 갑자기 돌아가셨다.
할머니는 욕실에 도끼빗을 걸어놓고 외출하기 전에는 꼭 머리를 빗었다. 세면대에서 빗에 물을 흠뻑 적셔 앞에서 뒤로 쓱쓱 빗어 넘긴다. 옷장에서 옷들을 여러 차례 갈아입고 어떤 게 이쁘냐고 물어보셨다. "이제는 뭘 해도 안이쁘지?! 주름이 왜 이렇게 많아." 나이가 들었는데도 이런 걸 물어보는 게 민망하셨던 것 같다. 나는 옷을 골라주기도 하고, 이쁘다고 말해주기도 하고 그랬던 것 같다. 그런데 돌아가시기 무렵에는 그러지 못했다. 때로는 귀찮아서, 때로는 그냥, 때로는 미워서.
생각할수록 꿈이 선명해진다. 꿈에서만 다정한 내 모습. 내가 자꾸 부끄럽고 미워졌다.
차라리 미워서 못되게 말한 순간은 덜 부끄러웠다. 아무 이유없이 귀찮아서, 대충 대답했던 순간이 나를 더 미안하게 했다. 할머니는 얼마나 외로웠을까.
요가소년님의 목소리가 들린다.
"이제 매트 위에 올라주세요. 수련 시작합니다."
요가소년님의 안내에 따라 몸을 움직인다.
몸에 집중할수록, 할머니 꿈이 점점 흐릿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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